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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철 폭우로 집이나 건물이 침수되면 도배·장판 복구 비용을 놓고 임대인과 임차인간 다툼이 발생한다. 임차인은 천재지변이라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하고, 임대인은 임차인이 폭우 대비를 잘못하여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설물 복구와 별도로 가재 도구나 물품에 피해가 있으면 보상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전세로 살고 있으면 임차인이 모든 수리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과연 맞는 말일까?
사소한 수리비를 놓고 임대인과 임차인이 다투는 사례가 많다. “수도꼭지까지 임대인이 갈아주어야 합니까?” 임대인은 언성을 높인다. 그렇다면 임차인이 부담해야 하는 수리비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이런 분쟁을 막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화장실 배수관이 막혀 임대인에게 수리를 요구했지만 이리 저리 날짜만 지연시키고 있다. 당장 화장실 사용을 못하니 임차인의 마음은 급하다. 누가 나서서 속 시원히 해결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직 그런 기관은 없는게 현실이다. 수리비 나 몰라라 하는 임대인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폭우로 침수되면 임대인이 시설물을 복구해야 한다.
태풍이나 집중호우로 시설물이 파손되면 임대인에게 복구 책임이 있다. 우리 민법은 기본적으로 임대인에게 수리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민법 제623조 (임대인의 의무)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 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
만약 시설물이 임차인 잘못으로 파손되었다면 임차인에게 수리 책임이 있다. 그런데 천재지변일 경우 임차인 잘못은 아니므로 일단 위의 민법 조항이 그대로 적용된다. 판례도 ‘수선하지 아니하면 임대차계약에 정해진 목적대로 사용·수익할 수 없는 상태’ 라면 임대인은 수선의무를 부담한다고 하여 천재지변이라고 하여 예외를 인정하지는 않는다. (대법원 1994.12.9.선고 94다34708 판결)
물론 임대인에게도 잘못이 없으면서 제3자에게 과실이 있는 경우, 예를 들어 담당 공무원이 제방의 배수구 관리를 잘못하여 침수가 되었다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으나, 여기에서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책임문제만 살펴 보기로 한다.
“임차인이 멋대로 하수구를 개조하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어요. 그 부분은 임차인이 책임져야죠?”
그렇다면 임차인도 시설복구에 일부 책임이 있다. 복구비용 분담에 관한 원만한 합의가 안되면 일단 임대인이 복구를 한 다음 임차인의 잘못을 입증하는 자료를 준비하여 임차인 부담분을 법원에 청구하면 된다.
침수된 가재도구의 피해는 임대인 책임이 아니다.
“침수된 가재도구에 대한 피해는 어떻게 됩니까? 역시 임대인이 보상해야 하나요?“
천재지변으로 인한 침수 피해에서 가재도구와 물품 등의 피해보상은 시설 복구와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임대인의 의무는 시설물의 복구에 한정하고 가재도구나 물품의 피해까지 책임지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판례에서도 “임대 목적물은 임차인의 지배와 관리하에 사용·수익하게 되므로, 임대인은 임차인의 안전이나 도난방지 등 보호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대법원 1999.7.9 선고 99다10004 판결)
그런데 천재에 인재가 겹친 경우가 어렵다.
“배수로가 좁아 몇 개월 전부터 집주인에게 확장공사를 해달라고 했거든요. 차일피일 하다가 이번 폭우에 다른 집보다 피해가 커졌잖아요?”
건물의 구조적인 하자로 피해가 커졌다면 임대인은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천재이고 어디부터 인재인지 가려내기 어렵다. 그래서 각각 반반으로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 판례에서도 천재(태풍 셀마)와 인재(건자재 방치)가 경합된 경우 천재의 기여분을 50%로 본 사례가 있다. (대법원 1993.2.23. 선고 92다52122 판결)
만약 임대인과 임차인 간에 원만한 보상 합의가 안 되면 이번에는 임차인 쪽에서 임대인의 잘못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법원에 보상을 청구하게 된다.
위에서 살펴본 내용을 한번 정리해보자.
천재·인재에 대한 임대인·임차인의 책임
① 천재인 경우 시설복구 (도배장판 포함) 임대인 부담 가재도구 물품 등 임차인 부담
② 천재와 인재가 겹친 경우 시설복구 (도배장판 포함) 임대인 부담 후 임차인 과실 입증하여 청구 가재도구 물품 등 임차인 부담 후 임대인 과실 입증하여 청구
전세로 살면 임차인이 수리비를 내야 하는가?
민법 제309조 (전세권자의 유지, 수선의무)
전세권자는 목적물의 현상을 유지하고 그 통상의 관리에 속한 수선을 하여야 한다.
앞에서 살펴 본대로 우리 민법은 임대인에게 수리 의무를 주고 있지만 예외적으로 등기부에 전세권을 설정한 경우에는 임차인 즉 전세권자 에게 수리 의무를 주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등기부에 전세권을 설정하지 않고 ‘그냥 전세’로 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냥 전세’는 이를 법적 용어로 ‘미등기 전세’ 라고 하여 전세권으로 보지 않고 보통 임대차와 같이 수리비도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12조 미등기 전세에의 준용)
따라서 전세권 설정이 임차인에게 반드시 좋은 것 만은 아니다. 위의 천재로 인한 침수피해의 경우 가재도구뿐만 아니라 도배 장판 등 시설 복구도 모두 임차인 몫이기 때문이다.
수리비 분쟁을 막기 위해 계약서에 수리비 범위를 정해두어야 한다.
금액이 적은 소모성 부품의 교체 또는 수리비를 놓고 다툼이 잦다. 사소한 수리비는 임차인이 부담하는 관행이 있지만 과연 얼마까지를 사소한 금액으로 볼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판례를 보아도 시원한 답은 안 나온다. “임차인이 별 비용을 들이지 아니하고도 손쉽게 고칠 수 있을 정도의 사소한 것이어서 임차인의 사용·수익을 방해할 정도의 것이 아니라면 임대인은 수선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대법원 1994.12.9. 선고 94다34708 판결)
따라서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계약할 때 다음과 같이 미리 정해 둘 필요가 있다. 품목 표시를 늘릴 수도 있고, 금액 한도는 조정하거나 아예 뺄 수도 있다.
임차인이 부담할 수선의 범위
전구·형광등, 수도꼭지, 샤워기 등 건당 수리비10만원 이하 또는 월세의 10% 이하
참고로 일본의 국토교통성이 작성한 임대주택표준계약서에는 임차인이 부담할 수선사항으로서 다음과 같이 7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별표4 임차인이 부담할 수선의 범위
다다미, 벽장문종이, 미닫이문종이, 전구·형광등, 두꺼비집 휴즈, 급수관 꼭지, 배수관 꼭지, 기타 비용이 경미한 수선
수리비 나 몰라라하는 임대인을 상대하는 방법
화장실 사용을 못하는 임차인
임차인 J씨는 화장실 배수관이 막혀 물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집주인에게 고쳐달라고 했더니 쓰는 사람 잘못으로 고장 난 거 아니냐, 임차인이 알아서 하라고 한다. 수리 업자에게 알아보니 배관이 오래되어 갈아야 된다고 하였다. J씨가 다시 임대인에게 전화하면 이젠 잘 받지도 않는다.
대표적인 나 몰라 임대인 중 한 사람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임차인이 우선 고치고 비용을 청구할 수밖에 없다. 이 때 임차인은 다음 수순을 밟게 된다.
① 수리비 청구 ② 임대차계약 해지 ③ 보증금 반환 및 손해배상 청구
더 이상 대화가 어려우면 편지를 보내야 한다. 내용증명이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 경우에는 다른 방법이 없겠다.
이 편지를 받고 순순히 송금해준다면 이미 나 몰라 임차인이 아니다. 자 다음 단계를 생각해 보자. 집 상태가 괜찮아서 다른 고장이 별로 없으면 수리비는 나중에 받기로 하고, 참고 살 수도 있다. 그런데 집이 낡아서 여기저기 손볼 데가 자꾸 나오는데 주인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 몰라 한다면 더 이상 살 수가 없다. 이 때는 위의 ②번 ③번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할 수 있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법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령 몇 십만원 정도의 금액을 받기 위해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소송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임차한 주택이나 상가의 수리에 관한 분쟁이 발생하면, 법원으로 가기 전에 지방자치단체의 분쟁조정위원회 등에서 간이(簡易)한 해결 절차를 통해 일차 걸러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글 이인덕
서울시청 임대차상담위원 서 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시립대에서 도시행정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상담실에 접수되는 부동산 분쟁 사례를 통해 그 예방법을 찾는다. 잘못 알고 있는 거래 상식, 법과 어긋나는 거래 관행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사례들을 글로 쓰고 있다. 현장의 공인중개사들을 상대로 계약서 작성 실무 교육도 한다. 저서『나몰라 임대인 배째라 임차인』(부연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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