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피눈물
어느 부부가 결혼한 지 십년만에 아들을 하나 얻었다.
그러나 칠 대 독자인 그 아들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안타깝게도 홍역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사흘간 연이어 울었다.
그런 끝에 뭄져눕고 말았지만 아버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부부는 아들을 뒷산에 묻었다.
어머니는 다시 한번 통곡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눈을 껌벅거리면서 하늘만 멀거니 바라볼 뿐
역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마침내 아내가 남편에게 항의하였다.
"당신은 그러고도 아버지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고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요?"
아내는 남편의 옷소매를 잡고 울부짖었다.
"여보."
하며, 그제서야 남편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그가 사흘 만에 처음으로 낸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는 '여보.'라는 짧은 한마디조차 다 끝낼 수 없었다.
그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그의 목 안에서 울컥한 무엇이
올라오면서 목을 콱 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사흘 동안 참아 왔던 슬픔에 복받친 아버지가
목놓아 울기 시작하였다.
꺼억꺼억 토해내는 울음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서는 벌건 핏덩이가
뭉텅뭉텅 쏟아졌다.
그날 아버지가 쏟은 피는 한 되가 넘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사흘 동안 흘린 눈물의 양은
그보다는 조금 적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자식을 몸 안에 키운다. 자식이 태어나면
어머니는 자식을 집 안에서 키운다.
그러나 아버지의 몫은 '안'이 아니라 '밖'이다.
아버지는 자신은 물론 집 안에 있는 자식과 함께,
자식을 돌보는 아내까지 보호해야 한다.
그러려면 밖에서 수많은 경쟁자와 경쟁해야 한다.
어쩌면 그는 지금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는 살벌한 적과
대치중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가혹함과 무서움.
그 세상 속에서 아버지의 하루하루는 상처의 연속이다.
처음, 그 상처는 눈물로 얼룩지지만 남자인 아버지는
곧 눈물을 그친다. 눈물은 곧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패배하는 날, 아버지와 함께 한 가정이 무너진다.
따라서 아버지는 패배할 수 없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눈물을 질끈 씹어 삼킨다.
한 번 삼키고, 두 번 삼킨다. 열 번을 삼키고, 백 번을 삼킨다.
그러는 동안 눈물은 피로 변한다.
묽은 피에서 진득한 피로, 마침내 피멍울로 엉킨다.
눈물로는 다 못할 아픔, 말로는 다 못할 아픔!
그 아픔이 서리서리 엉킨 피멍울이 아버지의 가슴을 턱턱 막아온다.
그리하여 자식이 죽는 마당에서도 아버지는 울지 않는다.
아니, 울지 않는다기보다 울 수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어찌 울음만이 울음이랴.
아버지의 마음은 아버지만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