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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뉴시스. |
[위클리오늘 최학진 기자] 해도 해도 너무했다. 자신의 조상이 아니라고 해서 굴삭기를 동원해 연고가 있는 묘를 마구 파헤쳐 버리고, 이것도 모자라 유해 12구를 따로 나누지도 않고 한데 모아 불법시설에서 화장해 버렸다. 유해 1구는 뼈와 살이 남아 있는 상태로 맨 땅에 방치하기도 했다.
예전 대역죄인에게나 사후에 행해지던 부관참시(剖棺斬屍)가 자본주의의 정수인 ‘돈’을 등에 업고 오늘날에 되살아났다. 우리는 아직도 ‘음덕(蔭德)’이라는 말로 조상에 대한 온갖 예를 갖추려 한다. 유교적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이들 ‘망나니들’에게 진정 자신의 근원인 조상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경기 안성시 죽산면에 임야를 소유한 우모(50) 씨 형제. 이들에게는 잘만 팔면 3.3㎡당 360여만원까지 받을 수 있는 알토란 같은 땅 445.5㎡(135평)가 있었다. 몇 억원을 손에 쥘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땅을 파는 데 문제가 있었다. 임야에 연고가 있는 분묘 13기가 자리해 있었던 것. 우 씨 형제는 이 분묘를 처리해야 임야 매매가 쉬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던 중 2011년 7월쯤 한 매수자가 나타났다. 이 매수자는 역시나 분묘 13기가 이장돼야 잔금을 치르겠다고 했다. 그러자고 한 우 씨 형제는 계약 파기 시 자신들이 잔금의 두 배 정도를 물어야만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제값 주고 13기나 되는 분묘를 이장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분묘이장은 법적 정식 절차를 밟으려면 묘지 연고자들과 협의도 해야 한다. 만에 하나 한 명이라도 분묘를 이장하지 않으면 우 씨 형제는 거액을 물어내야만 했다.
돈에 혹해 ‘멋대로’ 분묘이장 사주
골머리를 앓던 우 씨 형제는 2011년 7월 장묘업자 장모(48) 씨와 접촉했다. 정식 분묘이장 절차가 아닌 불법을 자행할 결심에서였다. 우 씨는 컨설팅비 명목으로 1억1000만원을 장 씨에게 건네고는 분묘 13기를 몰래 없애라고 지시했다.
정식 분묘이장 때보다 경제적, 시간적으로 크게 남는 장사였다. 유족들과의 협의에 따른 갈등도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빨리 임야를 매매해 큰돈을 만져보고 싶은 욕심이었다. 하지만 추석과 설날에 성묘를 올 유족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때를 잘 골라야만 했다.
거액을 받은 장 씨는 현대판 부관참시(剖棺斬屍)에 동참할 ‘망나니’ 끌어들이기 작업에 착수했다. 장묘업자 유모(52) 씨를 필두로 굴삭기업자 신모(39) 씨와 일용직 노무자 백모(41), 박모(49) 씨로 진용을 갖췄다.
드디어 ‘칼’에 물을 뿜고 ‘본업’에 충실할 때가 왔다. 마침 우 씨 형제로부터 땅을 살 사람이 왔다는 연락을 받은 후였다. 지난해 5월29일 장 씨 일당은 굴삭기를 앞세우고 분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들은 분묘 13기가 연고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천륜을 저버린 작업에 착수했다. 이때가 새벽 3시10분. 야음을 최대한 이용할 전략을 구사한 장 씨 일당이었다.
속전속결로 분묘 발굴, 유골 훼손
작업에 거칠 것은 없었다. 돈 앞에서 조상은 ‘나’의 조상만 있을 뿐 ‘너’의 조상은 존재하지 않아 천륜과 인륜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굴삭기로 분묘를 마구 파헤쳤다. 봉분은 굴삭기의 커다란 삽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분묘에 자리한 유골 하나하나를 깨끗이 닦아 고이 모실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이들은 13기의 분묘를 파헤친 후 유골 12구를 마구잡이로 한 데 모아뒀다. 2년 전에 묻힌 유해 한 구는 아직 살이 남아있어 따로 맨 땅에 한동안 방치했다. 이들에게 유골은 단지 치워야 할 ‘물건’이었던 셈이다.
작업을 마친 시각은 오전 6시쯤. 2시간 50분여 만에 분묘 13기에서 유해를 꺼내고 모든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런저런 절차로 분묘 1기를 이장하는 데 하루 종일 걸리는 것에 비하면 광속의 작업 속도였다.
이후 유골 처리도 일사천리였다. 유골 12구는 하나의 큰 박스에 담아 승려 최모(62) 씨에게 맡겨졌다. 최 씨는 지난해 6월 불법 이동식 화장시설에서 유골을 마구 화장해 버렸다. 승려 역시 이미 뒤섞인 유골을 분리, 수습할 마음은 없었다. 화장한 유골은 12개의 플라스틱 통에 나눠 담아뒀다. 이후 간신히 수습한 유골은 두 번의 뒤섞임으로 신원을 특정하기 어렵게 됐다.
2년 전에 묻힌 유해 1구는 범행 현장 인근 부지 우 씨 형제의 땅에 봉분을 만들지 않고 가매장했다. 이들에게 돈보다 숭고한 가치는 하늘에도 땅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분묘 13기를 처리한 우 씨 형제는 지난해 6월9일 매수자와 약속한 잔금까지 4억8000만원을 받아 목적한 바를 이뤘다.
그러나 이미 묘를 쓴 이들이 1989년과 1990년 각각 99㎡와 165㎡를 구입한 상태였다. 이 땅은 나눠서 등기가 불가능해 등기부 상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를 알고 이중매도까지 자행한 우 씨 형제였다.
유족들 꿈꾸고 산소 찾아가 ‘경악’
13기의 원혼이 구천을 떠돌았을까. 몇몇 분묘 연고자들에게 조상이 꿈에 자주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가다가 이상하게도 조상의 꿈이 계속되자 이상하게 생각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소에 들렀다. 봉분은 사라졌고 산소 여기저기 맨 땅이 드러나 있었다. 아연실색한 이들은 곧바로 안성경찰서로 달려가 신고했다. 원혼이 장 씨 일당의 범행을 세상에 알린 셈이었다.
고소를 접수, 수사에 착수한 안성경찰서는 지난해 9월 임야소유주 우 씨 형제와 장묘업자 장 씨 세 사람에 대해서만 불구속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분묘 연고자들이 ‘조상님 묘가 없어져 성묘도 갈 수 없다’는 탄원을 계속하자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이 전면 재수사에 착수했다.
평택지청은 공범을 밝히기 위해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계좌추적 등 면밀한 수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장묘업자 유 씨와 굴삭기업자 신 씨, 일용직 노무자 백 씨, 박 씨 등이 장 씨의 공범임을 밝혀내 ‘분묘발굴유골(사체)손괴’ 혐의로 모두 구속 기소했다. 차량으로 도주하는 장 씨를 직접 체포하기도 했다.
임야소유주 우 씨 형제가 분묘 발굴을 사주한 사실도 알아내 ‘분묘발굴교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승려 최 씨의 유골 12구에 대한 불법 화장 사실도 인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땅을 팔기 위해 연고가 있는 분묘를 법적 정식 절차 없이 멋대로 파헤치라고 한 우 씨 형제의 행동은 ‘하늘’을 무시한 일이다.
돈을 받고 굴삭기를 동원해 분묘를 까부수고 유해를 한 데 뒤섞어 불법 화장해 버린 장 씨 일당의 행각은 망나니 뺨치는 짓이다. 이들 모두에게 음덕(蔭德)이라는 말이 어울릴지 의문이다.
예부터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 하여 효는 물론 현재 자신의 존재 근원에 대한 존경과 감사함을 가르쳤다. 이들은 아무래도 자본주의의 정수인 돈에 홀려 단세포에서 홀연히 진화한 생물체였던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