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재(薦度齋)에 임하는 마음자세
사람이 죽고 나면
생전에 지은 업식에 따라
제 갈 길을 찾아 간다고 합니다.
스스로 생전에 지은 업식에 따라
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생에
집착이 강한 사람일 경우
인연따라 제 갈 길을 찾아 가지
못하게 됩니다.
집착되는 마음이
장애가 되어 발길을 붙잡고
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었을 때
곡을 하며 구슬피 울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나를 위해 슬피 울어주는
그 사람에게 집착을 하여
가야할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이 생을 떠돌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갈 길 몰라 헤매이는 영식들은
괴로운 나날을 이 생에 머물며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막아
바른 길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십구재(四十九齋)를 지내줍니다.
혹은 사십구일 동안의 사이에
결정되게 될 다음 생에 대해
보다 밝은 부처님 법을 들려줌으로써
보다 좋은 몸을 받아 가거나
극락 국토에 왕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사십구재를 지냅니다.
사십구재는 죽은 이의 명복을 빌고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49일 동안 하는 천도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사십구재며 천도재는
영가들에게 밝은 부처님 법을 들려주어
보다 밝은 지혜로써 밝은 길 찾아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죽은 영가는
생전에 가지고 있던 온갖 습(習)들과
생전의 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어서도 생전에 집착하던
모든 것에 착을 둡니다.
물론 생전의 마음자리 또한
그대로 가지고 있게 됩니다.
그렇기에 천도재를 할 때에는
돌아가신 분의 영식이
생전의 의식 그대로이기에
생전에 모시는 것처럼
그대로 상을 차려 놓고
절하는 등 예를 다해야 하며,
마음 또한
생전의 마음자리 그대로이기에
그 참주인공 마음자리가
서로 하나임을 바로 보게 하여
보다 밝은 지혜로
밝게 이끌어 주려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천도재(薦度齋)란
생전의 업식(業識)으로 인해
생에 집착하여 괴로워하고 있는 영가에게
무상(無常), 무아(無我)로
일체가 공(空)하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일러주고,
참주인공 마음자리는 너와 나,
부처님 마음자리가 서로 하나임을
바로 깨치게 하여
생전의 업식에 끄달려
집착하지 않고
밝은 지혜를 얻어
바른 길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도하는 이의 마음은
영가의 마음과 천도를 지내는 이의 마음이
밝은 불성 주인공으로써 근본이 하나임을
바로 알고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렇듯 주인공 본바탕이 하나이기 때문에
산 사람이 죽은 사람 천도를 해 줄 수 있는
도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가와 나의 근본이
하나임을 바로 믿기 때문에
내가 부처님의 법을 영가에게 들려주고
경전을 독경하며 염불해 줌으로 인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도를 하는 이의 마음은
'영가님 좋은 곳에 가십시오'
라고 하기 보다는
"영가님과 저의 마음 둘이 아니니
참주인공 마음자리를 바로 보고 깨우치십시오."
"부처님 가르침인 무상(無常),
무아(無我), 공(空)의 도리를 바로 깨쳐
어디에도 착을 둘 바가 없음을
바로 깨쳐보십시오"
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영가를 천도해 준다'가 아니고
'나와 영가의 마음이 둘이 아니기에
그 한마음 도리를 굳게 믿고 한생각 돌이켜
일체의 끄달림을 턱 하고 놓아버린다'는
마음이라야 합니다.
이 이치를 알고 보면
나의 수행하는 삶이 그대로
천도가 될 수 있습니다.
내 마음 바로 잡아 수행하는 것이
최고의 천도가 됩니다.
참생명의 근원은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도재를 하는데
비용은 얼마가 들고
상은 어떻게 차려야 하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형식에만 치우치고
마음도리를 도외시한다면
그건 한참 잘못된 것입니다.
천도에 임하는 이의 마음자세
그 하나가지고도 이미 천도는 되는 것입니다.
물론 형식적인 부분 또한
쉽게 넘기기만 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겉에 드러난 상차림 그 자체에
이미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상을 차릴 때에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오직 지극한 마음으로 스스로 준비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절에서 다 해주니
절에 잠깐 와서 재에 참석하고
차린 음식 먹고 돌아가면 되지 하는
마음 가지고는 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천도를 할 때에는
내 스스로 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천도 시작 하는 날 와서는
'스님, 스님만 믿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는 잠시 참여했다가
훌쩍 가 버린다면 되려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영가와 인연이 깊은 당사자의 정성이
가장 중요함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천도를 할 때에는
가족 몇 명만 와서 하지말고
모든 가족, 친지가 함께 모여
밝은 정성으로 동참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끝내놓고 나서
'이렇게 했으니 이제 천도가 되었겠지',
'천도했으니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겠지'
하는 유소득(有所得)의 마음은
경계해야 할 또 하나의 마음가짐입니다.
우선은 바라는 바 없는
청정한 무소득의 마음으로
천도에 임해야 하며,
자신 스스로 경전을 독경하고,
염불 해 주는 수고로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천도에 임하는 기간동안이나
천도재가 있기 몇 일 전부터
기간을 정해두고
금강경 독경이나,
나무아미타불 염불,
혹은 광명진언 등을
지극한 마음으로 염해야 합니다.
쉽게 하루 해서 끝내려는 마음은
깊은 정성이 아닐 터입니다.
이렇듯 천도재를 할 때에는
천도를 하는 이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
깊은 마음과 정성을 담아
천도재를 준비한다면
그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천도는 끝난 것입니다.
천도를 준비하는 과정
하나 하나가 바로 천도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날짜와 시간을 정해두고
하는 천도재 보다는
살아있는 모든 순간 순간이
천도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살아있을 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우고 마음을 닦았다면
더 이상 천도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순간 순간 집착을 비우며
방하착 하고 살아야
목숨 끊어지는 순간 저절로
방하착이 되는 것입니다.
죽는 그 순간
바로 놓을 수 있다면
그것이 참된 천도입니다.
그래서 불교 공부는
죽음을 준비하는 공부라고
하지 않습니까.
법구경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백 년 동안 다달이
천 번씩 제사를 지내기 보다는
한 순간 바른 법 생각해 갖는
그 복이 더 뛰어나다."
영가를 천도해
주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순간 순간 나와 영가가,
또 부처님이 둘이 아님을 바로 알아
굳은 믿음으로 한생각 돌이켜
크게 놓아 버릴 수 있다면
상을 차리고 절을 할 것도 없이
찰나 찰나의 마음이 곧 천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또한
바로 깨치지 못한 중생이라
그렇게 되지 않으니
상을 차리고 절을 하고
스님을 모셔 의식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자료출처 : 목탁소리
[자료출처 : 목탁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