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부동산을 싸게 사는 법
몇 년 전에 인기리에 방영된 <쩐의 전쟁>이라는 드라마에서 마치 높은 침대처럼 쌓아놓은 현금 50억 원을 보여준 적이 있다. 호사가들은 그 장면이 과장되었다며 의견들이 분분했지만, 나는 10억 원의 현금을 실제로 본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5kg짜리 사과 상자에 1만 원짜리 지폐를 넣으면 정확히 2억 원이 들어간다. 이 박스 다섯 개면 10억 원이다. 크기도 크기지만 사과상자 하나당 20kg, 10억 원이면 75kg이니 어마어마한 무게다.
만일 현찰 10억 원을 실제로 본다면 어떨까? 아마 잠시 얼어붙었다가, 이렇게 많은 돈을 어떻게 동원했을까 의심이 들거나 이중에 한 뭉텅이쯤 없어져도 모를 거라는 온갖 생각이 다들 것이다.
여러분이 100억 원대의 부동산을 매물로 내놓았는데 누군가가 계약금으로 현찰 10억 원을 들고 왔다. 그리고 90억 원에 팔라고 협상을 시도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렇게 가정으로만 볼 때는 판다, 혹은 안 판다가 50대 50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장의 속사정을 알고 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큰 물건을 매물로 내놓아본 사람이라면 사겠다는 사람보다 팔아주겠다는 브로커가 더 많이 붙는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부동산의 가격이 높을수록, 덩어리가 클수록 이른바 브로커가 많이 생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물건의 가격이 높을수록 그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수요자의 수가 한정되기 때문이다. 매수할 사람이 극히 소수이다 보니 이 물건에 관심을 가질 수요자를 찾아 협상테이블에 앉히기도 힘들뿐더러 적정한 가격에 매도하기도 쉽지 않다. 한정된 수요자는 대부분의 브로커가 매도자보다 매수자편을 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매매금액이 클수록 협상폭도 커지므로 매도자가 급하다면 정말 시세의 절반 가격에 처분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다보니 이런 물건만 전문으로 거래하는 브로커가 생겨나고, 브로커는 악성 루머를 퍼뜨려 주위의 시세를 한 번에 내려놓거나 매도자의 급한 사정을 역이용해 매물가격을 ‘후려치는’ 경우도 많이 생겨난다. 그래서 고가 부동산을 보유한 매도자는 이런 피해를 막으려고 물건을 중개업소에 내놓지 않고 암암리에 그들만의 커넥션이 있는 브로커를 고용해 물건중개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시기에 나타나는 매수자는 실제 구매의사를 가진 경우가 극히 드물다. 대부분 중개사나 브로커가 만들어낸 ‘가짜 매수자’가 대부분이다. 왜 이런 짓을 할까? 설사 좋은 물건임이 확실하다해도, 그물건의 가격을 내리기 위한 일종의 작업단계라고 보면 된다.
>현찰은 힘이 세다
어느 날 아는 분이 100억 원짜리 물건을 70억 원에 살 수 있게 도와준다면 커미션으로 5억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검토해보니 내가 보기에 이 물건은 시세가 70억 원인 물건이었다. 매도자는 매수자가 당연히 깎을 것을 예상하고 100억 원에 물건을 내놓은 것이었다.
만일 내가 욕심을 부렸다면 시세대로 사주고 수수료로 5억 원을 간단히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매도자의 대리인을 만나 매수 의사를 전달하며 가격을 조절해줄 것을 당부했다. 처음에는 응답이 없었으나, 3개월을 주시한 결과 70억 원까지 매도 금액이 내려왔다.
이후 나는 매매 당사자 간 만남을 주선했고, 그 자리에 현찰 10억 원을 들고 나갔다. 협상 테이블 옆에 이동수레 두 개에 가득 든 현금 10억 원을 보게 되면 매도인은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간단하게 그 부동산은 62억원에 매매가 성사되었다. 현금을 보여준 것만으로 그 자리에서 8억 원을 더 깎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부동산은 공산품처럼 소비자가격이 명시돼있는 것이 아니요, 그렇다고 공시지가 혹은 감정평가 금액이 절대적이지도 않다.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고 깎는 게 값인 것이다. 즉 심리전에서 승리하는 사람만이 원하는 가격에 매매를 성사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애초 100억 원에 나온 부동산을 62억 원에 매수했다면 매수자입장에선 앉은 자리에서 38억 원을 벌고 들어간 셈이라 큰 이득이고, 매도인도 최소금액은 받았기 때문에 쌍방이 만족한다. 이 거래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중개사도 매수인도 아닌 바로 현금이다.
현금 자체가 매수인의 신용이고 매수인의 확고한 의지를 증명하는 도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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