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사는 L씨(50)는 땅 잘 고르기로 이름난 부동산 고수다. 전원주택 사업을 한다.
좋은 땅을 매입해 멋진 전원주택을 짓기로 입소문이 난 터라 집을 산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시켜주는 경우가 많다. 근래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 연간 5채 이상 전원주택을 지어 분양했다. 그가 부동산 고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 땅을 살 때의 유의점을 배울 수 있다. 지난번 중앙SUNDAY 기고(1월 29~30일자 23면)에서 부동산 투자 때 토지이용계획확인서를 확인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이번엔 L씨의 사례를 통해 실전에서 겪을 만한 어려움과 해법을 알아본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L씨는 휴가지인 강원도에서 보기 드문 전원주택 부지를 발견했다. 배산임수(背山臨水)에 풍치가 빼어난 지형이었다. 야트막한 임야에 자작나무와 조선육송이 빽빽이 들어섰고 앞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림 같은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흥분됐다. 평상시에는 침착하고 꼼꼼하던 그였지만 마음이 앞섰다. 등기부상 권리관계만 간단히 확인한 뒤 볼 것 없이 임야인 전원주택 부지를 매입했다.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치고 집을 짓기 위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형질변경 등 인허가 신청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관청에서 ‘마을 주민 민원 때문에 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답신이 돌아왔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니 문제가 꽤 심각했다. 마을 사람들은 대대손손 그 산에서 송이버섯을 채취해 연간 수백만원씩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일정 금액의 보상을 해주지 않는 한 전원주택을 지을 수 없다’는 게 주민들의 민원이었다. 요구 액수도 만만찮았다. 11가구에 2000만원씩 총 2억2000만원에 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 토지에는 등기부에 공시되지 않은 ‘특수지역권’이 있었던 것이다. 특수지역권이란 인근 주민들이 공동으로 다른 사람 소유의 토지에서 초목 또는 야생물 채취 등으로 수익을 얻는 권리다. 마을 사람들이 오랜 기간 송이버섯을 공동 채취해 온 땅이기에 특수지역권이 성립한 것이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2억원 넘는 위로금을 지급한 후에야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등기부상 권리관계만 따졌다가 수업료를 호되게 치른 것이다. 그 뒤부터 L씨는 땅을 살 때 등기부에 공시되는 권리와 함께 공시되지 않는 권리도 철저히 살폈다.
한번은 경기도 소재 땅을 매입하려고 현장을 찾았다가 한쪽 땅이 파인 것을 발견했다. 땅 주인은 “별것 아니다”고 얼버무렸다. 의심이 든 그는 현장 사진을 찍어 전문가에게 자문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문가의 답변은 “등기부에 공시되지 않았지만 땅을 파놓은 형태로 볼 때 유치권(留置權)을 위한 터 파기 공사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유치권이란 부동산을 신축 또는 수리한 경우 공사비를 받을 때까지 해당 부동산에 대해 공사비만큼의 담보를 설정할 수 있는 권리다.
민법 제320조에 명시돼 있다. 유치권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법률적으로 다섯 가지 사항에 부합해야 한다. 첫째, 유치권 대상은 물건(부동산·동산)과 유가증권이어야 한다. 둘째, 유치권의 목적물(부동산·동산 등)에 관한 채권(받을 돈)이어야 한다. 가령 빌려준 돈을 못 받는다고 해서 채무자의 부동산에 유치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셋째, 채권이 변제기(돈을 갚아야 할 시기)에 있어야 한다. 넷째, 유치권자가 물건을 점유하고 있어야 한다. 다섯째, 유치권을 배제하는 법률 또는 계약상 사유가 없어야 한다.
이 같은 법적 권리 사항을 숙지한 L씨는 땅 주인에게 유치권 설정 여부를 물었다. 상대방은 “건물을 지으려고 터 파기 공사를 일부 했지만 아직 공사비를 지불하지 않은 상태”라고 답했다. 결국 매매대금에서 유치권 우려가 있는 공사비 6500만원을 공제하고 땅을 매입했다. 만약 이런 사실을 모르고 샀더라면 6500만원의 공사비를 고스란히 덮어쓸 수 있었다.
필자가 만나본 땅 부자들은 특수지역권이나 유치권처럼 등기부상 드러나지 않는 권리까지 꼼꼼히 챙긴다. 경험을 통해 등기부가 전부가 아니라는 학습효과가 생긴 것이다. 물론 드러나지 않은 복병을 확인하려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 터 파기 공사 여부는 현장을 돌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문제될 만한 권리관계가 있으면 이를 해결한 후 부동산을 매입해야 한다. 부동산 초보자들은 “등기부에 공시되지 않는 권리도 있느냐”고 반문하곤 한다. 보통 사람들은 전 재산의 절반 이상을 들여 집이나 땅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현장 확인조차 하지 않고 매매계약서에 도장 찍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물론 등기부를 꼼꼼히 살피는 것이 기본이다. 등기부에 있는 내용이 무얼 뜻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이도 적잖다. 등기부에서 부동산의 지번·지목·넓이 등 토지·건물의 현 상황은 ‘표제부’라는 항목에 나와 있다. 소유권과 관련된 권리 사항이 나오는 항목은 ‘갑구’다. ‘을구’는 소유권 이외의 권리 사항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 등기제도는 등기의 형식적 성립 요건만 갖추면 서류심사만으로 등기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래서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공신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로 인해 부동산 매입 후 등기 내용이 사실과 달라 손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정리해보자. 부동산 구입 때 먼저 등기부를 통해 소유자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이어 갑구와 을구에 나타나는 권리관계를 꼼꼼히 살핀다. 등기부에 문제가 없다면 등기부에 공시되지 않은 권리를 따져볼 순서다. 투자하기 전 유치권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권리를 해결해놓지 않으면 인수 후 큰 부담이 돼 돌아올 수 있다.
고준석(48) 동국대 법학박사로, 전국을 누비며 발품을 판 부동산 전문 컨설턴트다. 이론과 실제에 두루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저서 강남 부자들이 있다
(고준석 신한은행 서울 청담역 지점장)
출처:역세권명가 부사친카페/ http://cafe.daum.net/my1179 작성자:황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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